미국에 거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처음 약 6개월은 학교 기숙사에서 살았기 때문에 미국 생활도, 미국에서 운전하는 것도 아직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이후 학교 근처에 아파트를 구해서 나오고 중고지만 작은 차 한 대도 장만했다.
차가 생기니 신세계였다.
날 좋은 주말이면 길도 익힐 겸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그러다가 미국에서는 주말마다 집 앞에서 Garage Sale을 하는 집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한국의 중고거래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집 앞에 테이블을 펴놓고 옷이며 그릇이며 장난감이며 온갖 물건을 늘어놓는데, 가끔은 몇 달러짜리 소소한 물건을 건지는 재미도 꽤 있었다.
그날도 이런저런 Garage Sale을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그런데 맞은편에서 노란색 스쿨버스 한 대가 오더니 도로에 멈춰서는 거다.
물론 운전면허 시험을 볼 때 스쿨버스 관련 규정을 배웠다. 그런데 시험 문제로 볼 때와 실제 도로 한복판에서 마주치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였다.
내가 가던 길은 한쪽 1차선, 맞은편도 1차선인 좁은 왕복 2차로였다.

스쿨버스가 맞은편에 멈추자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반대편인데... 그냥 가도 되는 건가?”
잠깐 고민하다가 아주 천천히 스쿨버스 옆을 지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버스 옆을 지나가는 순간 스쿨버스 운전사가 창문 너머로 나를 정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거다.
영어도 제대로 안 되던 시절이었지만 그 표정만큼은 통역이 필요 없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딱 그 표정이었다. ㅎㅎ
뭔가 잘못했다는 느낌은 강하게 들었지만 이미 지나가고 있었으니 그냥 지나쳐서 집까지 갔다. 그리고 나중에 스쿨버스 규정을 다시 찾아보고 나서야 알았다.
그날 내가 멈췄어야 했다는 것을.
텍사스에서는 스쿨버스가 아이들을 태우거나 내려주기 위해 정차하고 빨간 점멸등이나 STOP 표지판을 작동하고 있다면 기본적으로 양쪽 방향의 차량이 모두 멈춰야 한다.
다만 도로 구조에 따라 맞은편 차량은 멈추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있다.
상황 1. 스쿨버스와 같은 방향이라면
내 앞의 스쿨버스가 정차하면서 빨간 점멸등을 켜거나 옆으로 STOP 표지판을 펼쳤다면 스쿨버스 뒤에서 반드시 정지해야 한다.
“아이들이 오른쪽으로 내리니까 왼쪽으로 살짝 지나가면 되겠지?” 하고 추월하면 안 된다.
버스가 다시 출발하거나, 빨간 점멸등이 꺼지거나, 버스 운전사가 지나가도 된다는 신호를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상황 2. 스쿨버스가 맞은편에 있어도 반드시 멈춰야 하는 경우
내가 그날 만난 도로가 바로 이 경우였다.
왕복 2차로처럼 중앙분리대가 없는 도로에서 맞은편 스쿨버스가 빨간 점멸등이나 STOP 표지판을 작동하고 있다면 반대 방향 차량도 멈춰야 한다.
심지어 왕복 4차로라도 가운데에 페인트로 그려놓은 중앙선이나 좌회전 전용 차선만 있을 뿐 물리적으로 도로가 나뉘어 있지 않다면 맞은편 차량 역시 정지해야 한다.
그러니까 그날의 나는 “버스가 맞은편이니까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던 거다.
상황 3. 맞은편 스쿨버스를 그냥 지나가도 되는 경우
도로 가운데 잔디나 공간이 있는 중앙분리대, 콘크리트 장벽 등으로 양쪽 도로가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경우 반대편 도로에 정차한 스쿨버스 때문에 내가 멈출 필요는 없다.
쉽게 기억하면 된다.
중앙에 선만 있다 → 양쪽 모두 멈춘다.
중앙이 실제 공간이나 구조물로 나뉘어 있다 → 반대편 차량은 지나가도 된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한국에서 보던 어린이 통학차량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미국에서 노란 스쿨버스가 STOP 표지판을 펼치고 빨간불을 번쩍이면 주변 차들이 줄줄이 멈추는 모습을 보면 처음에는 꽤 낯설다.
재미있는 건 한국에도 어린이통학버스 특별보호 규정이 있다는 것이다. 중앙선이 없거나 편도 1차로인 도로에서는 반대편 차량도 일시정지해야 한다. 그러니 법의 취지 자체가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다.
다만 미국에서 실제 운전을 하다 보면 노란 스쿨버스의 빨간불과 옆으로 쫙 펼쳐지는 STOP 표지판 때문에 “지금부터 이 도로의 주인공은 스쿨버스다”라는 느낌이 훨씬 강하게 온다.
그리고 적어도 텍사스에서 운전한다면 이건 꼭 기억해두는 게 좋다.
스쿨버스의 빨간불이 켜졌다면 일단 멈추자.
맞은편이라고 무조건 지나가는 게 아니다. 도로 가운데 진짜 중앙분리대가 있는지부터 봐야 한다.
괜히 나처럼 스쿨버스 운전사에게 황당하다는 눈빛을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텍사스에서 정차한 스쿨버스를 불법으로 통과하면 첫 위반도 벌금이 최대 1,250달러까지 나올 수 있다.
참고: Texas Transportation Code §545.066, Texas Department of Transportation School Bus Safety, Texas Department of Public Safe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