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단체로 주사를 맞았던 기억이 있다.
정확히 어떤 예방접종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반 아이들이 줄을 서서 차례대로 주사를 맞았고, 내 기억에는 주사기 하나를 여러 명이 사용했던 것 같다. 한 명이 맞고 다음 아이가 맞기 전 주사바늘을 불에 달궈 소독한다고 해서 우리는 흔히 ‘불주사’라고 불렀다.
이런 기억이 나만의 것은 아닌 모양이다. 2016년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에도 어린 시절 학교에서 학생들이 줄을 서 예방접종을 받고, 주사바늘을 알코올램프 불에 대어 소독했던 일을 ‘불주사’로 기억한다는 기고가 실렸다. 물론 이것만으로 당시 모든 학교가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지금은 당연히 한 번 사용한 주사기와 바늘을 다른 환자에게 다시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는 안전수칙이다.
그런데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주사’ 하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소는 팔이 아니라 엉덩이였다.
감기에 걸려 동네병원에 가도, 몸살이 심해 병원에 가도 의사가 “주사 한 대 맞고 가세요”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주사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간호사의 한마디.
“바지 좀 내리세요.”
여기서부터 어린 나에게는 늘 고민이 시작됐다.
도대체 어디까지 내려야 하는 걸까?
간호사가 “허리에서 정확히 7cm 내려주세요”라고 말해주는 것도 아니다. 어릴 때는 바지를 거의 발목까지 내린 기억도 있고, 허벅지쯤 걸쳐 놓은 적도 있다. 차라리 병원마다 ‘엉덩이 주사 맞을 때 바지는 여기까지!’라는 공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실제로 비슷한 안내문을 붙인 병원이 있었다.
2026년 4월 경기도의 한 병원 주사실에 붙은 안내문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는데, 병원 측의 설명은 아주 명확했다.
주사를 맞는 쪽 골반 아래로 바지를 살짝만 내려 달라는 것.
그러니까 발목까지 내릴 필요는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전국 병원에 적용되는 ‘바지 내리는 공식’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사할 부위만 충분히 노출하면 된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병원에 다니면서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미국에서 엉덩이에 주사를 맞아본 기억이 단 한 번도 없다.
독감주사도 팔, 코로나 백신도 팔, 다른 예방접종도 대부분 팔.
한국에서는 주사실에 들어가면 바지부터 걱정했는데 미국에서는 그냥 소매만 걷으면 끝이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팔에 맞는 주사가 더 아프게 느껴지긴 한다. 그래도 간호사 앞에서 바지를 어디까지 내려야 하나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점만큼은 확실한 장점이다.
그렇다면 같은 근육주사인데 왜 한국에서는 엉덩이에 많이 맞았고 미국에서는 팔에 많이 맞는 것처럼 느껴질까?
사실 핵심은 나라가 아니라 ‘무슨 약을 맞느냐’에 있다.
요즘 예방접종만 놓고 보면 사실 “미국은 팔, 한국은 엉덩이”가 아니다. 한국도 대부분 팔에 맞는다.
그렇다면 왜 내 기억 속 한국 병원에서는 엉덩이 주사가 그렇게 많았을까?
과거 한국 동네병원에서는 예방접종뿐 아니라 감기나 염증 같은 질환에도 치료 목적으로 주사를 맞는 일이 지금보다 흔했다. 이런 치료용 주사는 약의 종류나 양에 따라 팔보다 근육이 큰 엉덩이에 놓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미국에서 우리가 흔히 맞는 주사는 독감이나 코로나 같은 예방접종이다. 이런 백신은 보통 팔의 삼각근에 맞는다.
그러니까 내가 느낀 차이는 나라 때문이라기보다 주사의 종류가 달랐기 때문에 가깝다.
게다가 요즘은 엉덩이 주사도 무조건 뒤쪽에 놓지 않는다. 위치를 잘못 잡으면 신경을 다칠 수 있어 약의 종류와 양, 환자의 체격 등을 보고 팔이나 허벅지, 엉덩이 옆쪽 등 적절한 부위를 선택한다.
결국 내가 경험했던 차이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 한국에서는 치료 목적의 근육주사를 자주 접했고, 그런 약 가운데 큰 둔부 근육에 놓는 주사가 많았다. 반면 미국에서 일상적으로 가장 자주 접하는 주사는 예방접종이고, 성인 예방접종의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팔의 삼각근이다.
그러니 미국 사람들이 엉덩이를 특별히 싫어해서 팔에 주사를 맞는 것도 아니고, 한국 사람들이 엉덩이가 튼튼해서 그곳에 맞았던 것도 아니다.
주사를 놓는 장소는 결국 약이 결정했던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어린 시절 병원 주사실에서 들었던,
“바지 내리세요.”
그 말에 속으로 고민했던 수많은 순간들.
이제야 알았다. 발목까지 내릴 필요는 정말 없었다.